아메데오 모딜리아니 [Amedeo Modigliani]
이탈리아 태생으로 파리에서 활동한 화가이이자 조각가이다. 특정한 사조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폴 세잔, 야수파, 입체파, 아프리카 미술 등 다양한 미술양식에서 영감을 얻으며 활동하였다. 탁월한 데생력을 바탕으로 리드미컬하고 힘찬 선의 구성, 미묘한 색조와 중후한 마트에르 등을 특징으로 하며 긴 목을 가진 단순화된 여성상으로 무한한 애수와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1884년 이탈리아 북부 리보르노에서 유대계 가문의 막내로 태어났다. 1902년 피렌체의 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를 배운 당시에 그곳에서는 상징주의 미학이 유행하였고 모딜리아니는 이에 많은 자극을 받았다.
파리로 이주한 모딜리아니는 몽마르트르에 정착하는데 콜라로시 아카데미에서 인체소묘와 유화를 공부하는 한편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툴루즈-로트레크, 폴 세잔 등에 영향을 받았다.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와 교류하며 조각에 매료되어 특유의 길쭉한 석조 두상을 제작하였으나 작업 중에 발생하는 먼지로 인해 이미 결핵으로 약화된 폐가 더 손상되자 조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1915년 시인 겸 화상인 레오폴즈 즈보로프스키의 권유를 받아들여 회화로 복귀했다.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넘어 인간의 본질을 조망하는 순수한 형상을 그리는데 몰두하였다. 초상화와 누드화가 주를 이루었으며 긴 목을 가진 단순화된 여성상이 특징이다. 모딜리아니는 아방가르드 운동에 초연한 입장을 보이며 그의 작품은 향후 어떤 화파의 발생으로도 이어지지 않는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직관적인 작품 세계를 발전시켜 나갔다.
1971년 모딜리아니는 잔 에뷔테른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잔은 로마 가톨릭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젊은 미술학도였지만 사랑을 위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헌신적인 사랑으로 모딜리아니의 불안한 자의식을 공유한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동료 미술가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미술 시장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탓에 늘 변두리에 있었다. 같은 해 최초의 개인전을 열지만 통행인의 눈길을 끌기 위해 내 건 두 장의 누드화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바로 철거되고 전시회도 일찍 문을 닫고 말았다. 모딜리아니와 임신중인 잔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견뎌야 했다.
1918년 모딜리아니는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열정과 헌신만은 더욱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이 시기의 작품은 잔의 초상이 주를 이루는데 단순미가 더욱 강조되는 가운데 전에 없던 서정미를 엿볼 수 있다. 잠시 남프랑스 니스에서 요양하면서 병세가 호전되며 이곳에서 딸 잔 모딜리아니가 태어났다. 1919년 파리로 돌아와 다시 예술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다가 1920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그의 연인이며 아내였던 잔은 그 이튿날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그녀의 뱃속에는 8개월 된 아기가 있었다.